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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를 준비한다고 할 때, 우리는 흔히 연금, 부동산, 투자처럼 ‘자산’만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실제로 성공적인 은퇴를 이룬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산 규모보다도 ‘재무 지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죠.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숫자들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은퇴 준비는 자산을 많이 모으는 것보다, 재무 지표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조절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단순한 수치 나열이 아니라, 이 숫자들이 실제로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내 삶에 영향을 주는지를 아는 것이 핵심입니다. 오늘은 은퇴 준비를 위한 필수 재무 지표들을 하나하나 쉽게, 하지만 깊이 있게 풀어드릴게요.

    1. 순자산(Net Worth): 나의 경제적 체력 측정하기

    순자산이란 내가 가진 자산에서 모든 부채를 뺀 ‘실질적인 재산’을 말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내가 지금 얼마나 갖고 있는가’보다, ‘이 순자산이 앞으로 나를 얼마나 버텨줄 수 있는가’입니다.

    예를 들어, 3억 원짜리 아파트 한 채가 전 재산이고, 대출이 1억 원 있다면 순자산은 2억 원입니다. 그런데 이 2억 원이 전부 실거주용이라면, 실제로는 생활비에 활용할 수 있는 유동 자산은 거의 없는 상태인 셈이죠. 그래서 순자산을 파악할 때는 반드시 ‘유동성’과 ‘활용 가능성’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은퇴를 앞둔 50~60대라면, 총 순자산의 최소 30~40% 이상은 유동 자산이어야 합니다. 즉, 현금, 예적금, 펀드, 연금 등의 형태로 쉽게 인출 가능한 자산이 어느 정도 확보돼 있어야 의료비나 생활비 등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순자산을 계산할 때는 자산은 너무 낙관적으로, 부채는 너무 보수적으로 잡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하세요. 자산은 보수적으로, 부채는 엄격하게. 그래야 진짜 내 경제적 체력이 보입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자산관리 앱을 활용하거나, 엑셀 파일에 자산/부채 항목을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는 것입니다. 6개월에 한 번, '내 경제 건강검진'을 받는 셈이죠.

    2. 은퇴 후 예상 생활비 대비 자산 소진률(SWR): 돈을 얼마나 오래 쓸 수 있는가

    많은 분들이 은퇴를 준비하며 자산의 '크기'에 집중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건 그 자산이 '얼마나 오래 지속 가능한가'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자산 소진률(Safe Withdrawal Rate, SWR)입니다. 쉽게 말해, 내가 가진 자산을 매년 얼마씩 꺼내 쓰면 최소 30년은 버틸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표입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기준은 ‘4% 룰’입니다. 예를 들어 3억 원의 은퇴 자산이 있다면, 1년에 4%인 1200만 원, 즉 매달 100만 원 정도는 인출해도 최소 25~30년은 자산이 소진되지 않는다는 계산이죠. 물론 이 수치는 물가 상승률과 투자 수익률을 고려한 일반적인 평균값입니다.

    하지만 2020년대 이후 금리와 물가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전문가들은 '3.5% 룰' 혹은 '맞춤형 SWR' 개념을 제안합니다. 즉, 자산이 보수적인 예적금 중심이면 SWR을 2.5~3%로 낮춰야 하고, 일정 부분 주식·ETF 등으로 운용 중이라면 4%까지도 가능합니다.

    이 지표의 핵심은 ‘생활비 vs 인출 가능 금액’을 맞추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은퇴 후 매달 250만 원이 필요하다면, 연 3000만 원의 인출이 가능해야 하고, 이는 약 7억 5000만 원 이상의 자산이 필요하다는 뜻이죠. 반대로, 자산이 3억 원 정도라면 생활비를 월 100만 원 수준으로 낮춰야 합니다.

    즉, 자산 규모에 맞는 삶의 질을 설정하는 것, 그것이 이 지표의 진짜 목적입니다.

    3. 고정 지출 비율(Fixed Expense Ratio): 내 지출 구조는 안전한가?

    수입과 지출을 분석할 때, 특히 은퇴 후 중요한 항목 중 하나가 바로 고정 지출 비율입니다. 이건 월 지출 중 고정적으로 나가는 항목들(주거비, 통신비, 보험료, 공과금, 대출 이자 등)이 차지하는 비중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매달 250만 원의 생활비를 쓰고 있고, 그 중 180만 원이 고정 지출이라면, 고정 지출 비율은 72%에 달합니다. 이는 위험 신호입니다. 왜냐하면 고정 지출은 줄이기 어렵기 때문이죠. 반면 여가비, 외식비 같은 변동 지출은 조정이 가능합니다.

    은퇴 이후 안정적인 재무 구조를 유지하려면 고정 지출 비율을 60% 이하로 낮추는 게 이상적입니다. 특히 비필수 보험, 고가 통신요금제, 대출 이자 같은 항목은 재점검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자동차 보험을 매년 갱신하면서 조건 비교 없이 유지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연간 수십만 원의 지출 낭비가 생깁니다.

    가장 실용적인 팁은, ‘내 고정 지출 리스트’를 만들고, 1년에 한 번이라도 재계약이나 조건 변경이 가능한 항목이 있는지 확인하는 겁니다. 보험 리모델링, 통신요금제 비교, 대출 금리 재협상 등, 은퇴자는 수익을 높이는 것보다 지출을 줄이는 게 훨씬 큰 재정 효과를 줍니다.

    4. 은퇴 준비율(Retirement Readiness Ratio): 나의 은퇴 자산은 충분한가?

    이 지표는 내가 필요한 노후 자산에 비해 현재 얼마나 준비됐는지를 수치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은퇴 후 30년 동안 매년 3000만 원이 필요하다고 가정하면, 총 필요 자산은 9억 원입니다. 그런데 내가 지금 4.5억 원의 은퇴 자산을 가지고 있다면, 은퇴 준비율은 50%가 되는 거죠.

    이 지표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부족하다’가 아니라, 지금부터 어떤 속도로 준비해야 할지를 계산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 40% 수준이라면, 향후 10년간 연 1000만 원 이상을 추가 저축하거나 수익률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계산법 간단 정리:
    현재 자산 ÷ 목표 자산 = 은퇴 준비율

    물론 이 수치는 단순히 수입-지출이 아닌, 투자 수익률, 은퇴 시기, 기대수명 등을 고려해 맞춤형으로 조정해야 더 현실적입니다. 특히 국민연금, 퇴직연금, 연금저축 등 다양한 소득원을 포함시켜야 정확한 준비율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 지표는 나를 자책하게 하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나의 은퇴 준비가 어디쯤 와 있는가’를 알려주는 중간 점검표이며, 그로부터 전략을 조정할 수 있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는 셈이죠.

    숫자는 피드백이자 행동의 기준입니다

    오늘 소개한 네 가지 재무 지표는 단지 금융 전문가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숫자에 익숙하지 않은 평범한 우리가 은퇴 준비의 길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나침반’과도 같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나의 순자산을 점검하고, 은퇴 자산의 소진률을 계산하고, 고정 지출 비율을 정리하고, 준비율을 다시 확인해보세요. 그렇게 수치를 보고 행동을 바꾸는 습관이 쌓이면, 어느 순간 내 은퇴 자산은 ‘계획이 있는 자산’으로 바뀌어 있을 것입니다.

    은퇴는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숫자는 정직하게 말합니다. 지금, 나의 숫자는 뭐라고 말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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